고령지산동고분군
1. 개요
1.1.고령 지산동 고분군 소개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의 고분군으로 알려져 있는 고령 지역 내에 위치한 사적 제79호이다. 이 고분군은 704기의 봉토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4세기 말부터 6세기 중엽까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군의 북쪽에는 대가야의 중심 거점인 고령 주산성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대가야 궁성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1.2.고분군의 지정과 발굴 조사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79호로 지정되었다.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경북대학교,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등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대형분인 44호분, 45호분과 중형분인 32호분부터 35호분 등이 조사되었다.
1.3.대가야와 고령의 역사적 관계
고령은 대가야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며, 479년에 중국의 나라인 남제에 사신을 파견하여 보국장군본국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대가야는 독자적인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얻었으며, 고령을 거점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의 최고지배자집단의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어, 대가야와 고령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는 중요한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2. 구조와 배치
2.1.고분군의 내부구조와 봉분의 종류
고분군은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의 세 가지 구조로 구분된다. 돌널무덤은 상자형의 무덤으로, 사람이 숙명(葬名)을 갖춘 돌성 것이 대부분이다. 돌덧널무덤은 주곽과 순장덧널이 병렬로 배치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순장덧널은 깬돌이나 판석 등을 사용하여 쌓였다. 돌방무덤은 구덩식돌방무덤과 굴실형 돌방무덤으로 나뉘는데, 대개 굴실형 돌방무덤이 더 크고 내부 공간이 넓다.
2.2.대형분, 중형분, 소형분의 특징과 배치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대형분, 중형분, 소형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대형분은 가장 크고 눈에 띄는 봉토분으로, 주로 중앙이나 능선 상부에 위치한다. 중형분은 대형분보다 크기가 작으며 주로 능선 중간부터 하부에 많이 분포한다. 소형분은 대형분과 중형분 주위에 분포하며,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다.
2.3.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의 구조와 특징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은 모두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구조이다. 돌널무덤은 매장부분을 짜맞춘 상자형의 무덤으로, 대개 단독무덤이지만 대형분의 덧널로 존재하기도 한다. 돌덧널무덤은 할석이나 판석으로 벽을 쌓은 구조로, 단독무덤이나 대형분의 덧널로 존재한다. 돌방무덤은 널길과 널문이 있는 굴실을 가지는 매장형태를 가진다. 이 중에서도 구덩식돌방무덤은 내부공간이 크고 사람이 서서 다닐 정도로 넓다.
3. 발굴 조사 결과
3.1.최대형분인 44호분과 45호분의 발굴 조사 결과
44호분과 45호분은 지산동 고분군 내에서 최대형분으로 조사되었다. 44호분은 타원형의 봉분으로, 주실과 순장덧널, 그리고 순장자용 돌덧널 등이 발견되었다. 45호분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주실, 딸린덧널, 순장덧널 등이 발견되었다.
3.2.최고위계의 고분과 그 유물들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최고위계의 고분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고분들은 다량의 토기류와 함께 금동관, 갑옷, 투구, 무기류 등도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대가야의 지배계층의 무덤임이 확실하게 확인되었다.
3.3.고분군에서 발견된 토기류와 금동관, 무기류의 수습 내용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대량의 토기류와 함께 금동관, 갑옷, 투구, 무기류 등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에서 생산되고 유통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해당 지역의 경제력과 국제적인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지산동 고분군은 고령의 대가야가 창성한 시기부터 멸망하기까지의 시기에 조영된 고분군으로, 대가야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삼을 수 있는 유적지이다. 아직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유물과 정보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4. 대가야와의 관계
4.1. 대가야의 중심지로서의 고령 지역
고령은 대가야 시대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대가야는 고령 지역에서 형성되어 크게 성장하였으며, 현재의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그 중심지로 추정되고 있다. 대가야는 고령 지역에서 발전하면서 남강 중상류, 섬진강 수계, 남해안 일대, 금강 상류에 걸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는 현재 지산동 고분군의 위치와 일치하는 지역이다.
4.2. 대가야의 위상과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관계
대가야는 중국과 교섭을 가지는 독립적인 힘으로 성장하여 대가야의 위상을 높였다. 이에 따라 고령 지역은 대가야의 중심지로 인식되었고, 지산동 고분군은 이러한 대가야의 위상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간주된다.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가 형성되어 성장한 4세기 말 또는 5세기 초부터 6세기 중엽까지 조영된 고령 지역의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 유적은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 특히 지배 계층의 유산을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4.3. 대가야의 발전과 지산동 고분군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많은 양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군에서는 대량의 토기류뿐만 아니라 금제 귀고리, 갑옷 및 투구, 긴칼 및 꾸미개류 등의 무기류도 출토되었다. 이는 대가야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생활 문화와 군사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대가야의 사회 및 문화를 조사하고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5. 순장 사례
5.1. 지산동 고분군에서 조사된 순장 사례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순장 사례도 확인되었다. 순장이란 죽은 사람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함께 매장하는 장의 행위를 말한다.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32호분과 34호분은 주인공이 들어가는 주실 외에 별도의 순장묘곽을 가지고 있는 유형으로, 순장자가 자신의 묘곽을 독립적으로 가지고 묻힌다는 특징이 있다.
5.2. 순장곽과 주실, 부실의 배치와 순장된 인원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순장곽과 주실, 부실이 특정한 배치로 형성되어 있다. 순장곽은 순장자가 묻히는 곳으로, 주실의 외벽과 뚜껑 위에 있다. 주실은 주인공이 묻히는 공간이고, 부실은 주실 옆에 병렬로 배치된다. 이렇게 순장자가 매장되는 공간들은 여러 개의 소형 순장곽으로 이루어진 조영 형태를 가지고 있다. 순장곽에서는 순장자의 골격이 발견되기도 하며, 몇몇 유물들도 함께 발굴된다. 이를 통해 순장 과정과 순장자의 지위 추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5.3. 순장 사례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순장자의 지위 추정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순장 사례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을 통해 순장자의 지위를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제 귀고리, 영부검신형말띠드리개와 투구 등은 순장자의 지위가 높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토기류를 비롯한 다른 유물들도 지사범직(地士監職) 등의 지위를 가진 순장자들에게 선물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6. 현재 상황과 보존
6.1. 지산동 고분군의 현재 상황
지산동 고분군은 현재 고령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사적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오고 있으며, 다양한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도굴로 인해 일부 유물들이 조각나거나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으며, 보존과 관리에 대한 보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6.2. 보존 및 관리 상황
지산동 고분군의 보존과 관리는 경북 고령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고분들은 보호조치를 통해 보존되고 있으며,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도 해당 유적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도입된 보존 및 관리 정책들이 충분히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역 당국, 학계 등의 협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6.3.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중요성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유적을 통해 대가야의 발전과 위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순장 사례를 통해 대가야의 사회 구조와 순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 연구에 있어서 지산동 고분군은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고, 그 보존과 관리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